적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경찰서에 가야지. 분명 나는 시신이 없었으니 실종자 처리되어 있을 거야. 그것을 풀고 내 신분을 되살리는 게 우선이야.’

지갑 안에 신분증도 있었다. 어차피 간단한 조사야 있을 테고 나는 본인이 확인되어 쉽게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경찰서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 ‘내가 계별욱입니다. 3년 전에 실종신고가 되어있을 거예요.’라고 말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엔 ‘웬 취객의 헛소리인가’하고 못 들은 체하던 경찰이 내 이름을 치고 누른 후 심각해진 얼굴로 한참 동안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내 얼굴을 다시 쳐다보며 무엇인가 비교했다.

“아니, 계별욱 본인 맞는데. 갑자기 이게 뭔 일이래? 신분증 줘 보세요.”

나는 얼른 신분증을 내밀었다.

“도대체 3년 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문제는 그것이었다. 그냥 행방불명을 푸는 것이 아니라, 3년간의 행적을 설명해야 했다. 정신이 멍해진 나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정신을 잃었는데, 다시 눈을 뜨니 아까 어느 빌라 앞이었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3년 동안 어디에서 먹고 잤는지 말을 하라니까요? 어디, 신고 안 된 공장이나 숙식 가능한 농장 같은 데에 있었어요?”

“아니요, 진짜 아니에요.”

“혹시 노숙 같은 것 했어요? 머리랑 옷을 보니 그건 아니네.”

“네, 절대 아니에요. 진짜로 정신을 차려보니 동네였다니까요.”

“일단, 저기 의자에 앉아 계세요.”

나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한쪽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죄인이 아니지만 무언가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자정이 다 될 무렵, 순찰차 하나가 파출소 앞에 멈추더니 한 사람이 내려 내게 다가왔다.

“계별욱 씨?”

“아, 네? 네. 제가 계별욱인데요.”

“나, 남구경찰서 박종범 경사인데요. 계별욱 씨 실종 담당관이에요.”

난 그제야 아주 예전, 조은이에게 투자금을 선물하기 위해 내 집까지 찾아갔다가 문에 써 붙여져 있던 종이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거기 적힌 이름이 박종범이었었다. 야구선수와 이름이 같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얼굴 보니 맞네, 맞아. 그때 주변에 탐문하고 직장에서 사진도 얻고, 할 것 다 했거든! 그 얼굴 그대로네. 그런데 어째 3년 동안 하나도 안 변했지?”

“아, 하하하...”

“일단 순찰차 타세요. 파출소가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 하니까.”

나는 순순히 바깥으로 나와 순찰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박종범 경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뭘 했어요? 어디 뭐 잡혀가거나 범죄에 연루된 것 아니에요?”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이야기해도 좋아요. 내가 참작 가능한 부분은 다 참작해 줄 수 있으니까. 불법 사채 같은 것 썼다가 일이 커져서 잠적한 거라면 그 부분은 제도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니, 정말 아닙니다. 진짜 정신을 잃었는데 깨 보니 동네였어요. 사채 쓴 것도 없고 도박도 안 했어요. 마약도 안 했고 술도 안 마셨어요.”

“그건 일단 들어가서 하나하나 조사합시다. 장기 실종으로 넘어가면 골치 아픈데,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나타났다니, 나로서도 이건 참 기적 같은 일이네요.”

“그런데, 경사님.”

“네, 말씀하세요.”

“제가 돈이 온라인홀덤 그런데, 혹시 밥 한 끼만 사주실 수 있나요? 아까 컵라면이랑 삼각김밥을 먹긴 했는데 그걸론 전혀 배가 안 차서요. 정말로 100원짜리 하나만 남았거든요.”

나는 헤헤거리며 넉살 좋게 부탁했다. 그런 날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던 박종범 경사가 마침 정면에 보이는 24시간 콩나물국밥집 앞으로 차를 가져다 댔다.